[MIKA #09]제주 소년! 미국 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다- Tron Uprising 감독 오승현


'Avatar- The Last Airbender', 'Tron- Uprising', 'Fire Breather'등 유명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의 감독과 스토리보드 슈퍼바이져가 한국인인걸 알고 계셨나요? 제주도의 낙서 좋아하는 소년에서 Disney TV Studio 감독에 이르기까지, 그의 20년 애니메이션 여정을 들어 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오감독님. 최근에 Disney TV Studio에서 Disney Toons Studio로 옮기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Disney TV Studio는 DisneyToons Studio 바로 옆 건물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계신가요?

A) 작년까지 Disney TV Studio에서 'Tron- Uprising' 시즌1을 감독하고 시즌 2를 기다리는 동안 Disney Toon Studio에서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로 DVD용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비록 극장에서 상영되는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90분 길이의 장편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제작과정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사진2 Tron-Uprising

Q) 'Tron'은 TV 시리즈 중에서 손꼽힐 정도로 큰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어떠한 과정으로 감독으로 채택되신 건가요?


A) 'Tron'을 하기전에 Nickelodeon에서 'Avatar:The Last Airbender'총감독을 경험하였습니다. 'Avatar'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동안 같이 일했던 executive producer, Eric Coleman이 Disney XD vice-president 로 이직하면서 'Tron'의 감독자리를 제안했습니다. 몇 일 후 Disney를 방문해서 프로젝트의 스토리와 디자인을 접하고나니, 부담스러운 마음과 동시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군요. 특히 아트팀에는 유럽에서 잘 알려진 ‘Gorillaz’와 ‘The Beatles RockBand’를 제작한 팀들이 참여해서 독특하면서 높은 수준의 아트웤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프로젝트를 시작하니 여러가지로 많은 난관이 있었습니다. 프로듀서인 Charlie Bean이 감독 없이 그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는데, 액션씬에 경험있는 스토리 아티스트가 극히 소수여서 만족할 만한 수준의 스토리보드가 아니였습니다. 결국 기존에 끝낸 스토리보드의 액션씬은 다시 수정해야 했습니다.

▲사진3 유럽의 유명 캐릭터 락밴드 'Gorillaz', 이 캐릭터를 디자인한 아티스트들이 Tron에 참여하였다.


Q) Tron처럼 큰 프로젝트도 프리 프로덕션(Pre-production)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되는 군요.

A) 저는 원래 에피소드 8 부터 참여하기로 했었는데, 여건상 첫번째 에피소드부터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TV 프로젝트는 장편에 비해 빠르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Q) Disney Toon Studio는 홈비디오 시장(DVD, Bluray & Web Streaming)을, Disney TV는 TV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홈비디오 프로젝트와 TV 프로젝트의 차이점은 어떤 것일까요?

A) Disney Toon Studio로 옮겨올 당시에 저는 DVD 시장이 거의 사장되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여전히 DVD & Bluray 시장도 어마어마한 규모이고, Neflix, Hulu, Amazon과 같이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도 홈비디오 시장에 포함되기 때문에 오히려 전망히 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스튜디오의 콘텐츠 제작 방식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TV 프로젝트는 주어진 시간이 짧기 때문에 그 시간 안에서 최대한의 퀄리티를 만들려 노력하지만, 장편 프로젝트는 최고의 샷을 만들때까지 시간이 주어지는 편입니다. 물론 릴리즈 날짜가 있기 때문에 무한정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아서 수정할 기회가 TV 프로젝트에 비해 많이 주어지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는 동안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할 기회도 있기 때문에, 캐릭터 간의 관계, 성격, 사건등을 깊이 이해하고 작업하려고 합니다. TV 시리즈는 시간의 한계가 많기 때문에 스토리 에디터가 마무리한 스크립트를 스토리보드 과정에서 자주 바꾸지 않습니다.


처음에 장편 포멧의 작품에 참여했을때는 스토리보드를 그리면서 스토리를 수정해가는 방식이 매우 비효율적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분명 글로 읽었을 때와 간단하게라도 그림으로 표현되었을 때의 느낌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지금은 스토리보드 과정에서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방식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갑니다. 물론 이러한 방식을 고수하려면 넉넉한 자금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사진4 Disney Toon Studio는 주로 DVD용 장편을 제작하지만, 최근에 제작한 'Planes'처럼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한다

Q) 1992년에 한일동화라는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애니메이션을 시작하셨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애니메이션 업계에 뛰어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릴적 부터 애니메이션 제작이 꿈이었나요?

A) 애니메이션은 장래 희망으로 전혀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사실 집안에 건축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저도 자연스럽게 건축과를 꿈꾸고 목표로 했습니다. 하지만 입시에 가까워 질수록 그림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더군요. 부모님을 힘들게 설득해서 미대에 지원하였지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당시에 제주도에서 입시미술을 준비할 장소가 있을리 만무했지요. 대학 입시에서 좌절을 겪고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갈비집에서 일을 도우며 시간을 보내던 중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됩니다. 가게 문닫을 시간이 다 됐을 무렵 신혼부부가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서울에서 방학중에 놀러 온 사촌형의 친구들이였습니다. 심지어 부부가 모두 애니메이터였습니다. 그 날 술을 한잔하며 그 동안 그려온 제 그림을 그 분들께 보여줬습니다. 그 만남이 계기가 되어 이후에 한일동화에 동화맨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고, 이후 애니메이션을 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Q) 1992년 부터 2006년까지 14년 동안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하셨는데 어떠한 프로잭트에 참여하셨나요?


A) 한일동화, 진아트, 제이콤, 동우 애니메이션등을 거쳐 작화감독까지 경험하였고, 특히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서는 연출에 관여할 수 있는 스토리보드 아티스트 일을 선호하였습니다. '망치'와 영구 아트 무비의 '용가리'등의 콘티작업을 하며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던 도중 '원더풀 데이즈'라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를 만나 4년간 장착하게 되었습니다. 레이아웃, 애니메이션도 다 참여했지만, 스토리보드 작업을 하며 연출을 경험할 수 있었던 의미있는 작품입니다.

▲사진5 원더풀데이즈 포스터

Q) ‘원더풀 데이즈’의 영상은 높은 수준으로 완성 되었지만, 상대적으로 빈약한 스토리와 극장 흥행 참패 등으로 많은 비난을 받은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원더풀 데이즈’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세요?

A) 그 당시에 엄청 비난을 많이 받은 프로젝트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에 좋은 영향을 더 많이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원더풀 데이즈 키즈(Kids)’가 생겼습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아티스트, 애니메이터들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경험함으로서 티비 시리즈 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작품을 만드는 법을 익혔고 그 분들이 대부분 현재는 리더 포지션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을 이끌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나 ‘Legend of Korra’의 디렉터를 맞고 계신 류기현 감독님도 ‘원더플 데이즈 키즈’ 중 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장편 애니메이션의 퀄리티의 기준을 설정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봅니다.


Q) ‘마크로스’와 ‘마크로스 제로’에 참여하시는동안 카와모리 소지 감독님의 조감독으로 일하셨습니다. 카와모리 소지 감독님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으신건가요?

A) ‘원더풀 데이즈’를 마치고 일본의 ‘Satelight’라는 회사에서 ‘마크로스’ 제작 의뢰 연락이 왔습니다. 저희는 단순히 제작만 의뢰하면 하지 않고, 연출의 일부도 참여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요구가 받아들여져 저 혼자 일본에 6개월간 건너가 카와모리 감독님의 연출 스타일을 배웠습니다. ‘마크로스’ 프로젝트는 제가 연출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고 미국 애니메이션 시장과 연결되는 중요한 고리도 되었습니다.

▲사진6 오승현 감독님이 참여했던 '마크로스 제로'

Q) 미국 진출을 결심한 계기는 어떻게 되나요?

A) 우선 ‘아바타’팀이 저를 초청해줘서 가능했습니다. 여러 나라를 돌아 다니며 작업하고 싶다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 한 발 더 다가가는 기회이기도 했고요.

Q) 감독이라는 위치가 말로 많은 정보들을 전달해야하는 위치인데 언어의 장벽은 없으셨나요?

A) 물론 언어의 장벽이 있었습니다. 제 성격이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인데 생각을 다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첫 1년은 정말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일년 이후에는 용어들에 많이 익숙해졌고 어떻게든 저의 생각을 전달 할 수 있었으니 크게 답답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는 오히려 문화적 차이를 많이 느꼈습니다. 아이디어 회의 때 어릴 적 경험을 예시로 종종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미국과 한국의 유년시절이 다른 만큼 공감가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또 한가지 한국과 많이 다르다고 느낀 점의 감독의 역할입니다. 한국에서 감독을 할 때는 같이 일했던 스탭들이 못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감독 자신이 잘 못했다는 느낌이 들 곤 했습니다. 그래서 감독이 스탭들의 부족한 부분을 꼼꼼히 알려주는 성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감독은 하나의 포지션일 뿐이어서, 스탭들의 부족한 부분을 일일히 꼬집어 주는 문화가 아닙니다. 그래서 감독들 중에는 리뷰 할 때는 굉장히 친절하게 이야기하지만 이메일등으로 자세한 수정사항을 따로 보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되도록이면 얼굴을 보고 수정사항을 이야기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사진7 오승현 감독님이 그린 'Avatar-The Last Airbender' 스토리보드중 일부

Q) 앞으로 다른 TV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감독을 하실 계획도 있으신가요?

A) 처음 미국에 올 때는 저를 초대해준 친구들이 있어서 그 친구들의 우산 아래서 어느정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목표는 이 친구들의 도움없이 미국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살아 남는 것이었습니다. 수년이 지나 돌아보면 그 목표는 어느 정도 이룬 것 같네요. TV 애니메이션 감독은 경험해 보았으니, 앞으로의 목표는 DVD 장편 애니메이션의 감독이나 TV 시리즈 프로듀서를 경험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Q) 그 목표도 미국에서 이루고 싶으신건가요?

A) 네. 일단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물론 요즘 미국에서 나오는 장편이 일정한 공식 안에서 만들어져 독창적이지는 않지만, 비지니스 모델로서는 굉장히 탄탄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비지니스화 하는 과정도 일종의 훈련이나 경험으로 생각하고 배워보고 싶습니다.


▲영상1 오승현 감독님이 연출한 'Fire Breather'의 한 시퀀스





◎ 사진출처
사진1,4 직접촬영
사진2 'Tron- Uprising' 영상 캡쳐
사진3 'Gorillaz' 웹페이지
사진5 '원더풀 데이즈' 포스터
사진6 '마크로스 제로' 웹페이지
사진7 오승현 감독님 블로그(http://sho-cubrick.blogspot.com/)
영상1 오승현 감독님 Vimeo(https://vimeo.com/user11359513/videos)
*본 인터뷰 글은 한국 컨텐츠 진흥원에도 기재하고 있습니다.
http://koreancontent.kr/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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