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왜 '제대로 된' 컨텐츠 관련 온라인 스쿨이 없나?

대학조차 폭 넓은 배움을 사치로 여기며 커리큘럼은 갈 수록 학교 후의 삶과 간극을 좁히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유행과 같이 떠도는 인문학 열풍도 결국 사회가 원하는, 혹은 취업을 위한 인문학만 있을 뿐이다. 냉소적으로 시대의 교육을 비판해 봤자 누가 들어주기나 하겠냐만, 그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실용학 조차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2011년 NHN Next라는 프로그래밍 교육에 특화된 학교가 세상에 발표되었다. 학교를 이끌어갈 교수진들의 설립 이념, 새로운 형태의 교육에 열광하는 학생들, 10년간 1000억을 지원하겠다는 Naver의 자금력등이 결합되 실험적이고 진일보한 학교의 탄생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불과 학교 시행 3년만에 언론을 통해 여러가지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몇몇 초기 설립 교수들은 이미 이탈하고 새롭게 취임한 총장은 수익 모델로 Next를 이끌어가려 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안타깝게도 거대 프로그래밍 학원으로 전락하는 모양새이다. 언뜻보면 유능한 전담 교수진, 빵빵한 자본, 잘 갖춰진 시설과 건물등의 요소를 갖춘 Next의 삐걱거림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이미지 01> 전) Next 학장님의 글. 여러가지 복합적인 심경이 느껴진다.


얼마전 Lynda.com이라는 컨텐츠 관련 거대 온라인 스쿨이 1.5조에 LinkedIn에 매각되었다. Lynda는 아티스트 출신으로 남편과 같이 1995년에 Lynda.com을 설립하였다. 컨텐츠 분야를 시발점으로 20년간 프로그래밍, 비지니스 등과 같은 분야의 교육까지 확장하며 20만개 이상의 온라인 교육영상을 보유한 거대 온라인 스쿨로 성장시켰다. 앞으로 1.5조 이상의 역할을 할거라 분석한 LinkedIn의 통큰 투자가 미래 온라인 스쿨의 입지를 넌지시 보여주는 것 같다. 이미 미국은 MIT, 하버드, UC 계열 학교등 전통방식의 대학들도 온라인 수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고, 컨텐츠 교육 분야 온라인 스쿨인 Digital Tutors, Gnomon School, Animation Mentors, Anim School 출신의 다수가 픽사, 디즈니, 블리자드, EA, 루카스 필름 같은 메이져 회사에 합류하고 있다.

<이미지 02>  요즘은 안 다루는 것이 없는 lynda.com

남편과 둘이 출발한 Lynda.com, 픽사 출신 애니메이터들이 설립한 Animation Mentors, 블루스카이 아티스트들이 만든 Anim School등 소위 잘 나가는 온라인 스쿨을 보면 몇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1. 소규모로 출발
2. 본인들이 전문인 분야의 강의로 출발
3. 그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강사(멘토)로 수업 구성 및 다양한 강사풀 확보

물론 시간이 지나고 더 많은 자본이 유입되며 실시간 크리틱을 위한 시스템도 세련되지고 이벤트성 행사도 많아졌다. 더 나아가 온사이트(On-site) 수업들도 개설되는 등의 행보가 있지만 이는 부수적인 현상이다. 여기서 Next의 케이스로 돌아가 다른 시각으로 보자. 만약 Next가 Lynda.com이나 Gnomon과 같은 온라인 스쿨로 출발하였고, Animation Mentor와 같이 그 분야 전문가들이 컨퍼런스 콜을 통해 1:1으로 일주일에 1~2회씩 크리틱과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 었으면 어땠을까?

-잘 갖춰진 시설 & 건물 -> 교육 컨텐츠와 그 분야 최고 수준의 교수진 확보에 쓸 수 있는 자본. 고정적으로 나가는 서버비가 있지만 소규모로 출발하기 때문에 아직 큰 부담은 아닐 것이다.

-유능한 전담 교수진 -> 온싸이트 교육기관의 한계인 분야별로 교수진의 빠른 순환이 불가능. 필연적으로 따르는 제한된 교육 내용.

-빵빵한 자본 -> 창립 초기에 사기업으로 부터 1000억 규모의 투자를 받는 다면 당연히 자본 논리가 언젠가는 지배할게 아닌가? 풍부한 아카이브를 보유한 온라인 스쿨이 큰 규모의 투자를 받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상황이다.  

사실 Next를 안타까운 사례로 이야기했지만, 다른 한국의 컨텐츠 교육기관에 비하면 훨씬 진일보한 교육기관임은 틀림없다. MBC 아카데미, SBS 아카데미, VDAS, 그린 컴퓨터 아카데미, VFX Labs, DMC 아카데미, SF Film School 등 서울 안에는 제법 큰 규모의 컨텐츠 교육기관들이 있고 VFX Lab이나 SF Film School 같은 곳의 원장들은 헐리우드 영화 제작에도 참여한 베테랑 아티스트들이다. 조금 더 발전된 컨텐츠 제작 방식을 경험한 이들이 한국에서 교육을 진행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기존 학원방식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함은 실로 아쉽다. 앞에 언급한 학원들 외에도 전국에는 수백개의 게임, 애니메이션, VFX, 디자인, 모션 그래픽 학원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DMC 아카데미와 2개 정도의 소규모 학원을 제외하고는 온라인 교육을 진행하는 곳은 전무하고, 그들이 제공하는 동영상 강좌의 수준은 북미를 중심으로한 온라인 컨텐츠 스쿨의 그것과는 상당한 수준 차이가 있다.

2015년, Lynda.com 보다는 20년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컨텐츠 관련 온라인 스쿨이 생겨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메가 스터디, EBS, 헤커스 어학원등을 통해 온라인 교육이라는 방식에 많은 사람들이 이미 노출되어 왔고, 컨퍼런스 콜을 통해 화면을 공유하며 수업을 진행하는게 보편적일 만큼 테크놀로지도 발전되었다. 뿐만아니라 세계적으로 컨텐츠 분야 아젠다를 이끌어가는 리딩 스튜디오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인 아티스트 & 엔지니어들도 충분히 많아 졌다. 즉 양적, 질적으로 풍부한 강사풀 확보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컨텐츠 전문 스쿨은 학생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통념을 깨야할 시기도 왔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이루어진 온라인 스쿨은 프로레셔널들의 능력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기도하다. 실제로 EA와 같이 게임 분야 최고 수준의 회사에서 근무하던 애니메이터도 Animation Mentor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수업을 6개월간 들으며 본인의 스킬셋을 확장해 Pixar와 같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스튜디오로 이직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미지 03> Animation Mentor의 수업 종류는 간소하지만 수준별로 나눠진 수업들은 세분화 되있고 깊이가 있다. 선택과 집중을 잘 보여준다.

트랜드을 만들어내는 많은 컨텐츠와 플랫폼이 북미에서 나오는 상황 + 그들의 노하우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교육 시스템. 이러한 연결 고리 때문에 그들의 독주는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다만 유럽은 아시아보다 한발 앞서 본인들보다 예술적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북미의 제작 방식을 온라인 교육등을 통해 수년 전부터 적극 받아 들여왔다. 그 결과 최근에는 상업적으로도 좋은 결과를 내고 있고, 아카데미에 최종 노미네이션 되는 작품들도 꾸준히 만들어 내고 있다. 컨텐츠의 내용은 문화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작방식은 범문화적이다. 동아시아 전체를 관통하는 웰메이드 온라인 컨텐츠 스쿨이 한국에서 나와 지역에 관계없이 컨텐츠 제작자를 꿈꾸는 이들을 이끌어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Next에 관한 부분은 제 개인 소견입니다.  
** 온싸이트 교육( 기존 대학교육)의 장점도 많다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는 면대면의 대화를 더 선호합니다. 다만 요즘 추세를 반영해서 끄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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