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FA / Flashpoints] KPFA(센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공영방송) 11월 16일자 방송

 출퇴근 때 NPR, KPFA를 통해 흘려듣는 이야기들은 은근히 사람들과의 대화를 부드럽게 해주는 소스를 제공해주곤 한다. 비영리로 운영되는 체널들인 만큼 기부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데, 그들이 만들어내는 기획 프로그램이나 교양 특집의 만듬세는 기부에 인색한 나 조차 잠시 기부를 고려하게 만든다. 그중 특히 국외 소식을 15분간 밀도있게 다루는 'Flashpoints'라는 특집은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들을 인식할 수 있는 정도는 만들어 주는 것 같아서 좋다.

 이틀전 여느때처럼  KPFA를 들으며 꽉막힌 도로위를 기어가고 있는데, 최근에 있었던 광화문 집회와 국정 교과서 관련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한국의 현실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묘하게 이들의 시선을 엿보는 재미가 있었다. 해외의 공영방송이 바라보는 한국의 현실을 한국 사람들도 알면 좋을 것 같아 거칠지만 빠르게 번역해 공유하고자 한다. 

44:35부터 한국관련 내용 
이하 방송내용은 개인 의견이 들어가지 않은 단순한 번역입니다.

진행자: 토요일부터 서울 광화문에서 시위가 있었습니다.시위자들은 대부분 직장인, 농부, 학생들이었고,  근로환경, 농수산물 수입 문제, 그리고 국정 역사 교과서 문제가 주된 이슈였습니다. 약 130,000명 의 시민이 모였습니다.

수 많은 시민 참가자들은 거친(vicious) 경찰력과 마찰이 있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주세요.

리포터: Flahspoints를 오래동안 들어온 청취자라면 한국 정부와 시민간의 마찰은 수년간 계속 되왔다는 걸 알겁니다. 그리고 이번 시위는 그 마찰의 수위가 끓어 넘친 것 (boiled over)입니다. 시위는 아주 근본적인 변화(fundamental change)를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같은 것들입니다. 이번 집회는 지난 7년간 집회중 가장 큰 규모 였고 12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경찰 22,000명과 마딱뜨렸습니다.

진행자: 22,000명이요?! 모두 무장 경찰이었나요?

리포터: 예. 그리고 700대의 버스로 바리케이트를 쳐서 청와대로의 행진(March)을 근원적으로 차단했습니다. 그리고 경찰측은 군용 수준(Military grade)의 켚사이신이 포한된 물대포(Water Canon)를 가져와 6시간 동안 쉬지않고(6 non-stop hours) 시민들에게 퍼부었습니다. 온라인에 가서 그 당시 사진을 검색하면 눈보라가 쓰나미처럼(Tsunami of blizzard) 퍼붙는 듯한 충격적인 사진들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시위자중 한명이자 카톨릭 농부협회의 리더인 백남기는(농부) 물대포를 맞고 실신상태로 바닦에 내동댕이(knocked over on the ground) 처집니다. 도움을 주로간 시위자들도 물대포를 맞고 바닦에 쓰러집니다. 백남기는 현재 뇌사 상태로 사망에 이를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진행자: 아, 우린 지금 남아프리카의 아주 폭력적인 정부/시민간의 마찰 상황을 듣고 있습니다.

리포터: 남한입니다. 남아프리카가 아니고, 상황이 매우 유사하긴 하지요.(이렇게 인식된다니 씁쓸하더군요.)

진행자: 죄송합니다. 남한이지요. 한국정부는 최근 몇년간 근로환경을 근로자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려고 시도해왔지요. 이 부분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리포터: 그 부분을 설명하기 전에 현재 한국의 근로 조건은 이미 끔찍한(Already has terrible labor condition) 상태입니다. 한국의 경제는 근로자들의 쥐어짜내어 만들어낸 것입니다(breaking back of working classes). 그렇게 만들어진 경제로 근로자들은 아주 짧은 기간동안 중산층처럼 지낸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2번의 우경향 정부에 의해( recent 2 times right wing government) 그나마도 무너졌고 최근에는 더더욱 양극화가 가속되고 있습니다. 이미 60%의 한국 근로자는 임시 고용직(temp workers)입니다.

진행자: 60%가 노조 없는 임시고용직이라고요?

리포터: 네 맞습니다. 노조에 가입되있지 않은 근로자들입니다. 그리고 노동 유연화(flexiblization)라는 명목하에 임시 고용직의 비율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근로 계약을 At will(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조건)로 전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임시 고용자들을 2년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던지 계약을 종료해야하지만, 정부는 이 기간을 4년으로 늘리고자 시도합니다. 4년의 계약기간이 끝난 뒤에도 무기한(indefinitely)으로 같은 계약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은퇴 정년은 70살까지로 연장하려하지만, 가장 임금이 높은 나이(the age of peak wage)는 55살로 정하려합니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노조를 와해하려합니다. 

진행자: 정부가 이러한 정책을 진행하려한다면 근로자들과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려하는 걸까요?

리포터: 남한은 언제나 빠른 경제 성장에 따른 사회문제, 군사 문제등을 관찰하기 좋은 실험 무대(test case) 같은 곳입니다. 현재 노동 계층의 하층민화가 가속화 되고 있고 이는 TPP(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 가입국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양극화를 심화하는 정책을 밀어 부친다면, 노동 계층이 할 수 있는 반응은 총 파업(General Strike)일 것 입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통제불능(Ungovernable) 상태가 될 것 입니다. 특히 예를 들어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같은 현재 뜨거운 다른 이슈들과 같이 진행되면 더더욱 이를 막을 수 없을 것 입니다.

진행자: 역사 교과서 문제도 이야기 해봅시다. 왜 정부는 극단적인 우경화와 함께 역사교과서를 다시 쓰려고 하는 것인가요?

리포터: 제 생각에는 현재 정부와 내각의 정당성 문제인것 같습니다. 국정원이 개입(The intervention of National Security Intelligent Services) 되어 선거가 날치기(Fraudulent)로 진행되었다고 여겨도 큰 무리가 없는 정부이고, 현 대통령인 박근혜가 독재자 박정희의 딸(The daughter of dictator)인 부분도 있습니다.

진행자: 박정희는 미국편의 인물(America's guy)이었지요?

리포터: 맞습니다. 현 대통령은 아버지 시대의 권위주의적이고 독단적인(Authoritarian) 사회로 되돌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듯 전채주의자(Totalitarian)는 역사를 다시 쓰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 그들이 진행하고자하는 것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9종의 역사교과서를 모두 폐기하고 모든 학생이 정부가 발행할 단 하나의 역사 교과서로 공부하도록 하려하고 있습니다. 이건 큰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교육이 매우 강조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 졸업 후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척도가 시험 결과이기 때문에 교과서에 나온 내용은 마치 성경(Gospel)에 나온 글귀처럼 암기해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역사나 정치에 대한 인식을 통제하기 위한 매우 완강한(Determined)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 입니다.

진행자: 와우, 마치 텍사스 남부(극단적인 우파지역)에서 자신들만의 교과서를 쓰겠다고 하는 것과 유사하군요.

리포터: 몇몇 나라들이 이렇게 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이중 대부분의 나라는 군사 독재 나라입니다. 

진행자: 계속해서 지난 토요일 한국에서 있었던 큰 집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이러한 집회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리포터: 한국에서의 노조를 살펴보자면 194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시 수천명의 조합원을 가진 노동 조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개입하면서 이 노조는 불법으로 간주되었고, 미국은 꼭두각시 정부(Puppet Government)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가 진행한 가장 첫번째 일중 하나가 노동 조합 금지였습니다. 심지어 '노동(Labor)'라는 말을 금지어로 지정했습니다.  

진행자: 노동이라는 말을 못쓰게 했다고요?

리포터: 한국에서는 '노동'이라는 말은 쓰지 못하고 '근로(Diligent work)'라는 말을 사용해야합니다. 노동 계약, 노동 평가라는 말 대신 근로 계약, 근로 평가와 같은 식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탄압에도 노동조합은 언제나 돌아오곤 했습니다. 1960년 미국과 연합한 군 독재체제를 진행하려 할때도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왔고,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암살과 관련된 시위가 있었고,  1987년, 1997년등 계속해서 큰 규모의 시민 운동이 이어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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