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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니엘 블레이크 그리고 히든 피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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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겨스. 흑인의 대한 차별이 너무나도 당연하던 시절에 최초로 인간을 우주로 보내는 NASA 프로잭트에 참여한 수학 천재 흑인 여성. 이 소재만으로 벌써 극적이다. 어쩌면 너무 극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다루고 있는 소재자체의 매력이 넘치기 때문에,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것들을 제때에 잘 보여줌으로써 충분히 감동적이고 가슴에 남는 영화가되었다. 말도안되는 불평등을 참고 견디던 주인공은 관객들이 더 이상 못 참겠다 싶을때 즈음 폭발하며 같이 소리질러주었고, 그녀의 찾아낸 숫자가 한 생명에게 믿음과 용기를 주는 장면을 시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전통적인 방식으로 극적효과를 잘 살려내었다. 좋은 메세지를 가지고 있는 소재를 보기 편하게 만들어서 누가 감상해도 벅찬 마음과 함께 크레딧을 마주할 수 있는 영화였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켄 로치 감독에게 칸의 황금 종려상을 다시 한번 안겨준 작품이다. 영국에 사는 다니엘 블레이크는 선인도 악인도 아닌 평범고 묵묵하게 평생을 일해온 시민이다. 그런 그에게 시련을 주는 것은 바로 정부의 말도안되는 연금지원 시스템이다. 심장병으로 일을 쉬어야한다는 병원, 질병 수당을 줄 수 없다고 결정한 정부, 그래도 살아가야하기 때문에 취업준비 수당을 신청하려하지만 70세 노인에게는 너무 복잡한 인터넷 시스템과 이력서 준비과정, 또한 구직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고 모욕적인 언사를 하는 국민 보험 관리처 직원들. 이 모든 과정들은 평생 묵묵히 세금을 꼬박꼬박 내온 다니엘의 자존감을 끊임없이 갉아 먹는다. 묵묵히 살아온 이가 권리를 주장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시스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이것이 현실이라는 듯, 아무런 첨가제를 가하지 않은 담담한 연출이 이야기를 더 묵직하게 만들었다. 두 영화 모두 공통적으로 인물들의 감정과 그들이 극복해야하는 장애들을 오롯이 보여주는 영화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니엘이 극복해야하는 것들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의 것으로...
[라라랜드] 나, 춤추는 카메라, 그리고 데미안 차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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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 대한 추억이 있는 이에겐 반칙과 같은 영화이다. '미아(엠마 스톤 분)'와 같이 몽상(Pipe dream)을 쫓아 무작정 왔던 LA. 매 순간 변주되는 재즈와 같이 앞을 알 수 없고, 즉흥적이었던 3년간의 LA에서의 삶이 몽글몽글 떠올랐다. 갈등과 고민의 시간속에 지나쳤던 배경들이 스크린에 아련하게 펼쳐지니 무장해제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졸업작품을 위해 오디션을 진행할때, 하루만에 100여명의 배우들이 지원하는 현상을 보며 그들의 꿈을 너무 흔한 꿈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치부해버렸던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추억을 집요하게 쫓고있는 영화이다. 옛 헐리우드 방식의 매치 오버래핑, 사운드 컷, 클레식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등을 모조리 섞어가며 향수를 자극하는 한편, 젊은 감독 특유의 발랄함을 잊지 않았다. 특히 공연 장면과 뮤지컬 장면에서 드러난 데미안 차젤 감독 특유의 춤추는 듯한 카메라 움직임은 자칫 너무 옛것 같을 수 있는 영화에 감칠맛을 돋구는 향신료가 되주었다.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일은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미아에게 데미안 차젤 감독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의 입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게 꿈을 포기하는 이유라고? 내가 설득될만한 이유를 말해줘.' 자칫 오만하고 교조적일 수 있는 이러한 주장을 어쩌면 데미안 차젤이기에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본인의 단편 작품을 '위플레쉬'라는 수작으로 기어이 이끌어 냈고, 재즈에 대한 그의 사랑 또한 혼신을 다해 두편의 영화를 통해 표현했다. 이런 그이기에 초라한 모습으로 발버둥치는 나의 모습이 꿈을 포기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고집으로 똘똘 뭉친 30대 초반의 젊은 감독은 과연 어떻게 더 진화해 갈까 매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