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20, 2014

[MIKA #16] 의자 위의 여자 - 정다희 감독

<이미지 1> 정다희 감독

정다희 감독. 세계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중 최고라 여겨지는 프랑스 앙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최고상 수상과 함께 2014년 화려하게 등장한 한국인 아티스트입니다. 이후 정다희 감독의 최신작  'Man on the chair'는 칸 영화제, 히로시마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 상영되며 그녀의 이름을 세계 곳곳에 각인 시켜 왔습니다. 감독과 작품이 많은 곳에서 회자 될수록, 그에 대한 궁금증과 갈증이 커져갔고, 그때 즈음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영화제에서 그녀의 작품을 만나 해갈의 행운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지나친 기대가 실망을 줄지 모른다는 우려와 함께 감상한 작품은 제 기우를 비웃기라도 하듯 진한 여운을 주었고, 그때의 여운이 정다희 감독과의 인터뷰를 강요하였습니다. 그렇게 감독과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Q. 간단하게 자신 소개 부탁드려요?

A.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과 프랑스를 왔다 갔다 하면서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 정다희라고 합니다.

<이미지 2> 'Man on the chair'

Q. 최근 작품인 'Man on the chair'가 칸 영화제, 앙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등에서 많은 스팟라이트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작품들이 대부분 실험 애니메이션이었고, 특히 최근 작품인 'Man on the chair'는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고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까지 다다릅니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가장 인상적이 었던 점은 많은 실험 애니메이션들이 실험적인 이미지들의 나열때문에 작가의 의도가 모호한 경우가 많은데, 'Man on the chair'는 주인공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한 일련의 이미지들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이 작품의 통해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었이었고, 어디서 영감을 받으셨나요?

A. 나라마다 분류 방식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제 작업은 실험 애니메이션보다는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분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perimental film으로 분류되는 작업들이나, 2014년 안시 페스티벌에 새로 생긴 경쟁 부문인 Off-Limits에 속해 있는 작품들 등이 실험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작업은 항상 내러티브가 있으니까요.

 'Man on the chair'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고민해온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들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업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와 같은 의문들을 가졌는데요. 그 후 공부를 하면서, 철학자들, 화가들, 과학자들 등 많은 사람들이 그 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관점으로 고민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0년, 저는 저와 같은 고민에 빠진 그림 속 남자와 그 그림을 그린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손바닥보다 작은 책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 책의 이름은 'La chaise en bois(나무 의자)'입니다. 얼마 뒤 제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감독님 이 그 책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해주셔서, 애니메이션으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이미지 3> 검은 방 

Q. 초등학교때 존재의 근원에 대해 궁금즘을 갖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러한 궁금증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A. 글쎄요. 특별한 계기는 잘 기억나지 않고, 그런 궁금증들은 대체로 주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여기는 도대체 어디일까?' 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에 빠지면, 허공에 붕 떠 있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의자 위의 남자'처럼 실제로 공중에 떠 있는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우주에 관한 책들을 읽곤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뭘까?', '내가 여기에 있긴 하는 걸까?'라는 질문들로 이어졌습니다. 애니메이션이 상영되 고, 관객들이나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이런 생각을 가지고,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상 1> 'Man on the chair' 트레일러

Q. 지금까지 해오신 작품을 보면 의자, 나무, 패턴등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소재들에 매료된 이유가 있나요?

A. 오래 전부터 제 그림과 애니메이션에는 나무가 등장했는데요. 저도 프랑스에서 작업을 하던 중 '왜 그런 걸까?'를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쓰고 그린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모으고, 나무에 대해서 연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 '나무의 시간'입니다.) 저는 나무가 가지고 있는 성격들에서 인간과의 다른 점과 비슷한 점들을 발견하곤 했는데, 그게 너무 재밌었습니다. 특히 떠돌아다니는 인간에 비해, 나무는 환경이 어떻든 태어난 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산다는 게 매우 강인하게 보였고 그 점이 제가 가장 매력을 느낀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의자 역시 나무처럼 부동성을 가지고 있는데요. 나무가 죽은 후, 인간이 의자를 만들면서, 그 성격이 유지되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Q. 인간의 유동성과 나무의 부동성은 분명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둘 사이의 비슷한 점도 발견했다고 하셨는데, 어떠한 점들이 그렇게 느껴졌나요?

A. 사실 지구라는 절대적인 환경에 살고 있는 생물로서의 비슷한 점을 가장 많이 느낍니다. 물론 다른 여러 생물들이 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유독 나무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계절이 순환하는 것 에 따라, 나무에 새 잎이 돋아나고 그 잎이 푸르러지고 색이 변해 잃어버리게 되는 주기가 인간이 무언가를 얻고 잃는 것을 반복하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상 2> '나무의 시간' 티져 

Q. 'Man on the chair' 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작품들을 통해 수 많은 필름 페스티벌에서 수상, 상영해왔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페스티벌은 어디였을까요?

A. 안시(Annecy) 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학생 때, 애니메이션을 보러 한 번 놀러갔었는데요. 감독으로서는 'Man on the chair'가 상영될 때, 처음 가보게 되었습니다. 관객석에 앉아 불이 꺼지고 첫 번째 상영을 보면서, '이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야. 평생 이걸 하고 싶어.' 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수상은 전혀 기대했던 것이 아니어서, 제가 기절하지 않고 무대로 걸어나가 소감까지 말했다는 게 아직도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미지 4> 앙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수상 후 

Q. 기존 작품들을 보면 여러가지 다양한 종류의 영상 기법을 사용해왔습니다. 작품을 할때 기법을 선택하는 기준과 그 중에서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기법은 어떤 것인가요?

A.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려서 여러가지 재료를 사용해본 경험 때문에 다양한 영상 기법을 사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만든 후, 이것저것 실험해보면서, 개념적으로 이야기에 가장 부합하는 기법을 선택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기법은 고를 수가 없네요. 연필은 디테일한 묘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물감은 모든 프레임에 색깔을 다르게 넣을 수 있기 때문에, 목탄은 따뜻한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좋습니다. 또, 실사를 촬영하면, 물체나 인물, 실제 빛이 가지고 있는 재질과 풍부함이 좋습니다. 앞으로도 여러가지 기법을 사용해보고 싶습니다.

Q. 한국에서 홍익대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석사를 마쳤습니다. 프랑스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A. 대학을 다닐 때, 유럽으로 배낭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요. 문화와 예술이 풍부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아서 프랑스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회사를 다니다가 애니메이션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저절로 프랑스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Q.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에 매료되었어도 학교를 선택할 때는 어떠한 기준이 필요하지 않았나요? 특별히 아르데코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A. 프랑스의 좋은 애니메이션 학교들에 반해, 아르데코는 디자인 학교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다른 전공들이 있었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이나 판화 수업, 비디오 수업 등도 들을 수 있다는 것과 제가 좋아하는 감독인 Florence Miailhe가 애니메이션과 선생님으로 계시다는 것이 학교 선택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미지 5> 프랑스에서 작업공간

Q. 졸업 후 Fontevraud abbey라는 곳에서 아트 레지던트를 하였습니다. 어떻게 레지던시를 하게 되었나요? 그리고 레지던시의 경험은 어떠하였나요?

A. 아르데코를 다닐 때, Fontevraud Abbey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이 있었는데요. 그 당시 학교 선생님이 그 곳에서 작가체류를 하고 계셔서 레지던시 시스템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졸업 후 단편 애니메이션 기획 지원서를 제출해서, 레지던시 작가로 선정되었습니다. 정말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온 젊은 감독들과 서로 작업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Man on the chair'를 그 곳에서 만들었는데, 좋은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주변이 숲과 해바라기 밭으로 둘러싸여 있어, 30분을 차를 타고 나가야 시내가 있는 외진 수도원입니다. 작업이 끝난 저녁 시간에는 감독들이 돌아가면서 자기네 나라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불고기와 해물파전, 제육볶음을 만들었습니다. 막판에 부엌 뒤에 있는 방에서 탁구대를 발견했는데, 늦게까지 다같이 탁구를 쳤습니다. 모두 운동신경과 경쟁심이 대단했습니다.

Q. 프랑스를 가기 전 작품들과 프랑스에서 머무는 동안 창작한 작품들을 보면 스타일의 차이가 많이 납니다. 어떠한 부분이 이러한 변화에 영향을 미쳤나요?

A. 사실 프랑스 가기 전에 만들었던 개인 작품들과 현재의 작업들의 큰 틀과 주제는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회사를 다닐 당시의 작업이 매우 다른데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게 제작을 하고, 또 같이 일하는 스텝들의 스타일도 많이 들어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프랑스에서의 공부는 한 마디로, '나는 누구인가.'였습니다.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싶은 그림들을 찾아가게 도와준 것 같습니다. 이 전에 한국에 있을 때는 그런 것들을 고민하기에 너무 바쁘고 스스로 무언가에 쫓겼던 것 같습니다.

<이미지 6> 'Man on the chair' 아이디어 스케치

Q. 종종 상업적인 작업도 하시던데, 본인 작업과 커머셜 작업은 어떻게 균형을 맞추면서 진행하시나요? 그리고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궁금해 할 부분인데, 경제적인 부분은 어떠한 행태로 채워가며 작가활동을 유지하나요?

A. 'Man on the chair' 이 후에는 커머셜 작업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현재는 단편 애니메이션에 집중해서 작업하고 있는데요. 한국과 프랑스의 지원 프로그램을 동시에 받아서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 완성 후에 TV 채널에 팔거나 페스티벌, 상영회 등 배급도 한국과 프랑스에서 동시에 하고 있는데요. 배급에서 발생하는 수익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Q. 2014년 부천 국제 학생 애니메이션 페스티벌(PISAF)의 심사위원중 한명이었습니다. 작가로서 참여하는 페스티벌과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페스티벌은 어떻게 달랐나요?

A. 작가로 참여하는 페스티벌은 즐기면 되기 때문에, 마냥 즐거웠습니다. 작품을 보다가 다른 생각이 나면 잠깐 다른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졸리면 졸기도 했는데요. 심사위원일 때는 모든 작품을 자세히 보고, 좋은 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 상영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개인적인 취향에 의해 심사하지 않고, 작품을 보는 여러가지 관점을 가지고 심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른 외국 심사위원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고, '심사는 이렇게 진행되는 거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Q.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그리고 앞으로의 꿈은?

A.방 안의 가구와 물건, 공간에 남은 흔적들로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하는 것이 앞으로의 꿈입니다. 제가 앞으로 만드는 작품들 중 어떤 작품은 인정을 받고 어떤 작품은 그렇지 않 겠지만, 그 결과에 영향을 받아 일희일비하지 않고, 하고 싶은 애니메이션을 계속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들이 계속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지원'과 '시장'이 한국에 많이 마련되는 것도 저의 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미지 & 영상 출처
이미지 1, 2, 3, 4, 5, & 6- 정다희 감독 제공
영상 1 & 2 - 정다희 감독 vimeo chan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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